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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셋째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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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
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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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칼럼] 한비야가 새해에 전하는 말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 앞, 허름한 떡 가게에는 언제나 웃음꽃이 피어난다. 떡집
할머니 때문이다. 탤런트 강부자님과 똑 닮은 할머니는 앞이 트인 가게 창
밖으로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하면서 뭐라도 한 가지씩
칭찬을 해 준다. 옷이 썩 잘 어울린다, 얼굴이 더 환해 보인다, 중년
내외가 그렇게 나란히 걸으니 신혼부부 같다 등등.
덕분에 사람들은 떡 가게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 역시
할머니한테 머리모양이 예쁘다, 걸음걸이가 씩씩하다는 "그날의 칭찬"을
받으면 괜히 하루 종일 머리 스타일에 자신이 생기고 걸음을 더욱 씩씩하게
걷게 된다.
사람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다. 어쩌다 한번씩 가게에 들어가면 할머니는 이
떡은 이래서 맛있고 저 떡은 저래서 맛있다며 떡이 마치 자식인 양 자랑하느라
정신 없고, 심지어 가게 앞 은행나무까지 저 나무는 은행도 풍성하게 열리고
낙엽 색깔도 특별히 예쁘다고 칭찬하신다.
한번은 내가 피부가 곱다고 칭찬해 드렸더니 평생 길에서 떡 장사하느라 고생은
했지만 덕분에 수십 년간 떡시루 김을 쐬어 이렇게 됐다며 나이 먹어도 곱다는
말을 들으니 기분 좋다고 하신다.
"할머니가 칭찬해 줄 때 우리도 그렇게 기분 좋아요."
이런 내 말에 활짝 웃으시며 이렇게 대답하셨다.
"글쎄. 나는 사람을 보면 칭찬할 게 먼저 눈에 들어오네."
참 신기하다. 한글을 못 깨우쳐 가게 장부를 손수 만든 상형문자(?)로
정리한다는 할머니가 "상대방의 장점을 한눈에 찾아내고 그것을 극대화한다"는
국제홍보학의 기본을 어떻게 아셨을까?
아무튼 할머니가 무심코 던지는 칭찬 한마디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의 하루를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 모르실 거다. 칭찬은 칭찬을 낳는다더니 할머니 덕분에
나는 일상생활에서 작은 칭찬을 주고받는 즐거움을 한껏 누리고 있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렸을 때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랐다. 잘나서가 아니라 언니
둘이 모두 "공주"인 덕분에 "선머슴"인
셋째 딸 내가 집안 심부름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 아버지는
계속 심부름을 시켜야 하니 잘한다, 최고다 했을 테고 동네 가게 어른들은
꼬마가 왔다갔다 하니 착하다, 똘똘하다 하셨던 거였다.
더욱이 그때는 전화가 아주 귀했는데 아버지가 신문기자여서 동네에 한 대뿐인
전화가 우리 집에 있었다. 당연히 누구네 며느리 아이 낳았다, 누구네 아버님
돌아가셨다 등등 급한 전화는 다 우리 집으로 왔고, 나는 온 동네에 다니면서
그 전화통지 심부름을 했다. 그 덕에 동네에서 "우물 앞 집 셋째
딸"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어른들은 나만 보면 반가워하시며 뭐라도
주려고 하셨다.
아버지와 산에 같이 다니면서도 온갖 칭찬을 들었다. 산을 무척 좋아하는
아버지는 언니들이 산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자 내가 아예 걸음마 할 때부터
산으로 데리고 다니셨다. 아장아장 산을 오르는 꼬마 아이를 보고 등산객이
모두 장하다, 잘 걷는다 칭찬해주니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다녔던 거다.
얼마 전 정신과 의사 친구에게 들었는데 어렸을 때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자기의 뜻을 거침없이 펴나간다고 한다. 어릴
때 받은 칭찬 퍼레이드가 지금의 나를 형성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까 그때는
억울하게 언니들이 해야 할 심부름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칭찬받는
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으니 인생 전체로 보면 백 배 천 배 득이 되는 일이요
"공주"언니들에게 오히려 고마워 할 일이다.
칭찬을 많이 받고 이만큼 자랐으니 이제 나도 떡집 할머니처럼 칭찬 많이
하면서 살 결심이다. 칭찬효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칭찬은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의 행복지수가 훨씬 높아진다고 하니 더욱 잘되었다. 칭찬이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보려는 태도인데 이것이 바로 행복의
근원이자 동력이라는 설명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내 마음이 조금만 더 편하고
행복의 조건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누군들 그렇게 살고 싶지 않으냐고.
나 역시 남에게 좋은 소리만 하고 싶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서는 도저히 그렇게
안 된다고.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그러나 그 행복의 조건은 순전히 외부에서만 얻을
수 있는 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황이나 조건과 관계없이 내 밖에서
가해지는 힘을 내 안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꿔 행복의 조건으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닐까? 이름하여 "행복 변전소"가 있으면 되는
것이다.
나는 6년째 월드비전이라는 국제구호개발기구에 다니면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기어이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았다.
파키스탄 대지진 때 한 순간에 부모를 잃고 난민촌에서 생활하면서도 임시
천막학교에서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구구단을 외우는 아이들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전쟁이 끝나면 농사 지을 씨앗을 항아리에 묻어두고 고향을 떠났다는
아프가니스탄 농부들의 환한 얼굴을 대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이토록 절박한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 주위에서도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귀신같이 행복할 이유를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에게만 가면 어떤
악조건도 칭찬과 희망과 행복으로 변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마음속에는
"행복 변전소"가 있음이 확실하다.
빰빠라 밤!
드디어 2007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날은 새 일기장의 첫 장을 펼친
것처럼 설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2007년 일기장에는 매일 행복한
얘기로만 가득 찼으면 하는 건 누구나의 바람일 거다.
비결은 있다.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와도 행복으로 바꿔주는 "행복
변전소"를 설치하고 가동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변전소를 움직이는
땔감은 칭찬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는 일이다. 우리 동네 떡집 할머니가 아낌없이
나눠주는 그런 작은 칭찬 말이다.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주 가뿐하게!
(칼럼 내용: 중앙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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