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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예제1] |
저는 197*년 5월 00태생으로 서울 마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내 왔습니다.
1*대종손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나서 엄격한 아버님과 너그러우신 어머님의 가르침을 배워 성격이 차분하며
약간은 내성적인 면이 있습니다.
확실한 책임감 그리고 활발함을 고루 갖추면서 많은 이성과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는 사색을 좋아하여 방과후에는 집 뒤 놀이터에서 여러 가지의 주제를 놓고 많은 시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시절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실망감을 안겨주기도 하였습니다.
한때에 잘못한 저의 판단과 그런 생활로 인하여 대학이란 문턱에서 멀어졌습니다.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로 고등학교를 진로를 정하게 되었으며 그때의 삐뚤어진 사고방식을 한 순간에 고치기에는
힘들었습니다.
친구가 유난히 많은 저로서는 좋은 친구들과 나쁜 친구들 사이에서 무난히 많은 갈등을 하면서 처음으로 삶의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첫째 .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
둘째 . 내 자신에 대해 확실하게 남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위치.
셋째 . 남을 속이는 웃음보단 속아주는 웃음. 이렇게 정하고 그렇게 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회사에 입사하여 근무를 하였으나 사직서를 제출한 후 군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군 입대를 통해 좀더 구체적 하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갖추기 위해 군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
육군 제 **사단 중화기 분대장으로 재대한 저는 군 생활에서는 확실한 통솔력과 강인한 자신감으로 중대장과
소대장
소대원으로부터 많은 신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재대후,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여 모은 돈으로 조금한 실내 포장마차를 했습니다.
그러나 경험부족으로 인하여 반 년만에 실패를 맛보았으며, 그 후 축산업에 취업하여 판매 관리를 2년간 하여
모은 돈으로
개인 창업을 하기 위해 1998년 11월에 저의 개인 사업장인 P.C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위치적인 조건과 현실적 냉혹함 앞에서 또 한번의 좌절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실현들이 내 자신에 발전의 계기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패배의 슬픔을 맛보지 않고 어찌 승자의 기쁨만을 논하겠습니까.
패자의 자리에 있어본 사람만이 승자의 위치에 서서 비로소 진정한 기쁨을 알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내 앞에 어떠한 일이 주어지더라도 슬기롭고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름없음을 확인합니다.
2000년 **월 **일 작성자 : 비즈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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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이 자기소개서는 정리가 되지 않았다. 누구나 하는 그런 일은 될 수 있으면 빼고,
자신만의 특별한 경험인 군생활에서 분대장이었던 것,
개인 창업했던 얘기들 위주로 간결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형식도 너무 난삽하다. 깨끗한 글씨체와 형태를 갖추어야 보기도 좋을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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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예제2] |
1. 성장과정과 학창시절 저는 하늘만 빠끔히 내다보이는 강원도 태백에서 석탄 캐는 광업소의 사무원을 아버지로하여
3남 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
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신자로서 집안분위기는 항상 화목하였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육상반에 가입하여 운동에 너무 신경을 쓴탓인지 체력은 건강했지만
학교성적은
형편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부족한 공부를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각고의 노력한 덕에 공부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어 대학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뒤에 있는 동생들의 뒷바라지와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을
돕기 위해
직장을 택할 것인지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던 끝에 공군을 지원하여 입대하였습니다.
2. 성격및 재능. 어렸을 때부터 저의 성격은 쾌활하고 진취적이었으며, 매 사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자신은
물론 남을 위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반드시 실행해 옮기곤 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격으로 때로는 성급하다는 평이나 시행착오를 범하는 일도 많았습니다.
힘든 훈련속에서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자 노력했고 또한 인 내심도 길렀습니다.
3. 지원동기 및 나의 전망 군복무를 마치고 평생의 직장으로써 꿈을 키울 요람을 찾다가 귀사를 택하게 되었습니다.
귀사에 입사원서를 내게 된 동기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체로서 가장 짧은 기간에 세계속을 누비는 회사로 만드신
사장님과
전사원에게서 많은 것을 배움과, 또 내가 기르고 닦은 지식을 바탕으로 훌륭한 사원이 되어 회 사와 국가에
이바지하겠다는 각오로
감히 귀사에 입사를 희망합니다.
인간존중.인재제일의 정신이 우선되는 귀사에 입사가 허락된다면 제가 가지고 있는 모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여
귀사의 발전에
힘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할 것을 약속합니다.감사합니다.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름없음을 확인합니다.
2000년 **월 **일 작성자 : 비즈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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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이 자기소개서는 첫째, 맞춤법이 틀린 게 너무 많다.
둘째, 성격이나 지원동기가 너무 도식적이다. 이미 많이 본듯 한 자기소개서는
매력이 없다는 뜻. 셋째, 처음 시작부분에 너무 감상적으로 시작했다. "하늘만 빠끔히 내다보이는"
자기소개서는 감상문이 아니다. 좀더 정제된 표현이 필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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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예제3] |
저의 어린 시절은 서울의 관문이자 제2의 항구도시인 인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현재 철강회사에서 근무하고 계시고, 어머니는 2남1녀인 저희 남매들에게 따뜻한 보살핌을 베풀어
주시고
격려와 용기를 복돋아 주시는 분입니다.
어릴때부터 달리는 데 자신이 있었으므로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육상반에 가입, 체력을 단련시켰을 뿐 아니라
새로운 기록을 내기 위해 땀을 흘렸습니다.그러다보니 신중하기는 하지만 소극적이던 저의 성격이 적극성을 띄게
되었고,
새로운 기록을 낼 때마다 자신감을 갖게 됨에 따라 활발한 성격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단체생활을 통하여 협동심과 조직에 대한 적응력을 배웠다고 생각합니다.
OO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달리기를 계속하는 한편 방과 후에는 학과공부에
치중하였습니다.
학과공부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선생님의 충고에 따라 교내의 여러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여
능력개발에 힘을 기울 였습니다.
물리와 화학을 특히 좋아하였던 저는 국토가 협소하고 경제발전에 필요한 석유, 우라늄은 물론 산업기초자원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판단. OO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전공은 물론 자신의 안목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교양공부도 착실히 하였던 대학생활은 저에게 자유와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배우게 하였고 성인으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였습니다.
군복무 후 남은 학과를 마친 저는 적성도 살리고 사회적으로 기여도 할 수 있던 곳을 찾던 중, 인간존중의
정신과 인화가
우선되는 사풍에 이끌려 귀사를 택하였습니다.
자기 위치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로써 입사가 허락되기를 희망합니다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름없음을 확인합니다.
2000년 **월 **일 작성자 : 비즈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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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이 자기소개서는 일반적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 잘못된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어린 시절, 아버지는...
어머니는... 격려와 용기를 복돋아 주시는 분입니다. 정말 많이 보고 또 보고 했을 자기소개서입니다. 여기서
무슨 개성을 찾을 수 있을까? 둘째, 열거식으로 쓰다보니 중점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셋째,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기보다는 짜맞추기식 자기소개서라는 데 최대의 결점을 안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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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예제4] |
충북 음성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는 저의 아버지는 교직을 천직으로 아시느 모범적인 교육자이시며,
어머니는 박봉에도 불평없이 뒷바라지를 하시는 진정한 교육자의 아내였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철저한 가정교육 덕분에 저희 3남 4녀의 형제들은 가난한 가운데서도 밝고 티없이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두 형들을 따라 서울로 서울로 올라와 함께 자취를 하며 @@중에 다녔습니다.
중학시절엔 특별활동으로 서예를 공부했는데, 먹과 붓을 가까이하는 사이에 덜렁대던 성격이 많이 차분해지고,
무슨 일이든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힘을 한시라도 빨리 덜어드리기 위해 인문계 진학을 포기하고 @@상고에 입학했습니다.
고1때부터 타자와 주산에 주력, 타자는 국.영문을 모두 익히고, 주산은 2급의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틈틈이 취미로 익힌 기타 실력도 만만치 않아 소풍 때 오락회라도 열리면 제법 인기를 끌었답니다.
이제 그동안 갈고 닦고 실력을 실험해 보기 위해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귀사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사윈들의 복지문제에 특히 관심을 솓는 경영방침에 호감을 가져 평소부터 선망해 왔습니다.
부모님이 항상 일러 주시던 말씀대로 [언제 어느곳에서든지 꼭 필요한 사람]으로서 일할수 있다면 어떤부서라도
좋습니다만
가능하면 타자와 주산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습니다.
저에게 입사의 영광이 주어진다면, 미미한힘이나마 회사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또 저의 장애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름없음을 확인합니다.
2000년 **월 **일 작성자 : 비즈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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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정말 도저히 고치려고 해도 불가능한 자기소개서의 예이다. 자신의 특징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유치한 면(밝고
티없이 자랐습니다, 평소부터 선망해 왔습니다 등등)까지 드러나고 있다.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쓰는 편이 좋다.
가끔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은 사람의 나이에 따라 글도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다. 선택하는 글에 따라 지식의
정도나 연륜이 먹기 마련이다. 언어 선택은 그만큼 중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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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예제5] |
1. 성장과정과 성격
나는 가까스로 전문대학을 나온 게 내 최고의 학력이다. 학력이 말해주듯이 나는 공부와는 별로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 왔고
그 이유는 머리가 별로 좋지 못하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 노력도 남 못지 않게 했지만 왠일인지
나는 성적을
높이지 못했고 늘 중간을 밑돌기만 했다. 그렇다고 나를 비관해 본일은 없다. 잘나도 나요 못나도 나이기
때문이다.
비록공부는 잘하지 못했지만 건강엔 자신을 가졌었고 또 누구보다도 건강하다. 육체만이 아니라 정신 건강도
최고 라는 항상
자부해 온 터다. 머리가 뛰어나지 못한 만큼 나는 다소 우직하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고 또 듣고 있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내심 불쾌했으나 내 성품이려니 싶어 결코 화를 낸 적은 없다. 영리한 간사함보다는 다소 미련하나마 정직한걸
좋아하는
게 내 성품이기 때문이다.
2. 학창 시절 및 재능.
전문대학시절 나는 겨우 꼴지를 면할 정도 였으나 과의 일, 학교 일, 써클활동 등 대외적인 일엔 내가 빠지면
안될 정도로
매사에 나는 적극적이었고 활동적이었다. 좋은 일 궃은 일 가리지 않고 내 차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록 학업에는 뒤졌으나 몸으로 해낼 수 있는 일엔 어지간히 익숙해 있었고 또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지략이나 머리를 짜내는 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대신 손발로 해낼 수 있는 일엔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게 주어진 별명이 온달이다. 바보라는 놀림인 줄 잘 알면서도 나는 내 별명에 화를 내본 적이 없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락부락한 무뢰한은 결코 아니다. 자랑 같지만 정직할 만큼 정확하고 미련한데도 넓은 융통성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터다. 가슴은 넓다. 건강한 칫수가 아니라 마음가짐이 크다는 뜻이다. 째째한 위인들을 보면 마음에
안들어 한다.
술도 어지간히 잘한다. 기분이 아주 좋을 때나 다소 나쁠 때는 보통사람 두 배쯤은 거뜬히 넘길 수 있다.
그렇다고 붉어진 얼굴을 쳐들고 싸움을 벌였거나 시비를 벌인 일이 결코 없다. 되레 기분이 좋아질 뿐이다.
나는 좀처럼 후회하는 법이 없다. 모든 일은 슬기롭게 해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서투르게 처리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매사에 서투른 것은 아니고 내게 있어 숙련된 일이면 결코
실수하는 법이 없다.
더러 날 보고 융통성이 없다고들 한다. 허나 모르는 소리다. 받아들이는 수용자세가 세련되지 못했을 뿐 결코
옹졸하지는 않다.
탁 트인 위인이라고는 할수 없지만 가슴을 열어 놓고 사는 편이다.
3. 지원동기
시시콜콜 따지는 것도 질색이다.
대충대충 넘기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 성격이다.
이 성격 때문에 더러 손해도 보지만 뉘우쳐 본 적도 없다. 둔함.우직.미련이 내 대명사다.
그렇하듯이 정직.온화.성실도 또한 내 대명사다. 나는 나를 사랑하듯이 우직과 둔함과 미련을 사랑한다.
약삭빠른 것보다는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 지지리 못난 내 소개를 했지만 부끄럽거나 기분 나빠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이런 나를 채용해 부려먹는 데도 신중할 필요가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
상기 내용은 사실과 다름없음을 확인합니다.
2000년 **월 **일 작성자 : 비즈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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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요즘 솔직하게 자기소개서를 쓰라고 하니 위의 자기소개서처럼 쓰는 분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만심에
빠진 신참을 뽑으려는 것이 아니라 능력있는 겸손한 분을 뽑으려는 것이다. 위 자기소개서는 정말 서투르게 쓴
흔적이 역력하다.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솔직함을 넘어 방만함으로, 좀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솔직한
면은 살리고, 자만심으로 보일 부분은 고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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